룸퍼퓸50%할인(-3월7일까지)
회원 대상 전품목 5%할인 혜택 제공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추가 시 할인코드 제공
회원 가입 동시에 이메일 수신 동의 시 3000P제공


검색 SEARCH
사물단상. 환상의 나라에서 온 아라빅 검.
 
가로, 세로, 높이 각 10cm 가량, 무게 약650그램의 검정색 박스를 열면 다채로운 색과 향기가 쏟아진다. 
수 주 동안 향오일에 숙성시킨 꽃잎과 가지 그리고 반투명한 호박색을 띄는 나무 수액 덩어리를 담아 우리는 디퓨저로 만들고 있다.
이 수액 덩어리는 오일과 만나면 점성을 띄어 탁월한 착향제로 기능한다.
이 수액 덩어리의 명칭은 아라빅검 Arabic Gum이며 발견되고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멀게 고대 이집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라를 봉합하는 재료들 사이에서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화장품 사이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의 기록Natural History에 따르면 약제사들의 소화 불량과 염증을 치료하는 처방전 사이에서 아라빅검을 찾을 수 있다. 
현재에 이르러 아라빅검은 우리의 홈디퓨저의 주요한 재료 중 하나이다.
이 아라빅검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자라는 아카시아 나무에서 채취되어 농가 조합의 선별작업을 거쳐 항공편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이 작은 디퓨저 박스를 앞에 두고 교통 수단의 발전이 세계를 얼마나 촘촘하고 광범위하게 연결시켰는지, 자유무역질서가 얼마나 재화와 노동이 국경을 초월하여 교환되고 부를 축적할 수 있도록 도왔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 이 순간 현대인은 인류사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존재이며 국적, 인종, 종교와 같은 경계를 넘어서 매순간 연결되어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감격에 젖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고 망상이다.
 
3천년전 페르시아만 근처에서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만나는 하천지대에서 수확한 곡물과 오만에서 채굴한 구리를 교역하던 딜문Dilmun의 상인,
2천년전 아라비아반도 남단에서 나는 프랑킨센스를 낙타에 싣고 수십일 동안 사막을 건너 페트라Petra로 향하는 대상,
7세기 호르무즈 해협 Hormuz Strait에서 돛을 올려 여름 남서계절풍을 따라 구자라트Gujarat, 캘리컷Kozhikod에 정박하며 말라카 해협Malacca Strait을 거쳐 중국 광저우에 도착한 페르시안 상인,
10세기 홍해 길목에서 인도산 향신료와 중국산 실크를 카이로와 동지중해 혹은 멀리 바그다드로 보낸 카리미 Karimi상인,
13세기 이슬람세력과 기독교세력으로 분열된 지중해에서 동방의 선진문물을 유럽에 전파한 베네치아 상인,
16세기 희망봉을 돌아 말라카 해협에서 향신료를 구매하고 마카오에서는 실크를 나가사키에서는 은을 가득 실어 나른 포르투갈 상인이 앞서 존재했다. 
실제로 교역의 역사는 인간이 거래를 통해 더 윤택한 삶을 영위하려는 욕망과 함께 시작되었고 구대륙(아프리카, 유럽, 중동,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은 
다양한 경로(사막과 대초원을 건너는 길,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을 건너는 길, 홍해와 인도양을 건너는 길)를 통해 여러 인종, 종교, 문화가 교차되고 연결되었다. 

고대 문명; 인더스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간의 교역 루트

유럽과 중국을 잇는 3갈래의 무역노선 
15세기 포르투갈 무역항로

현대인은 이들보다 더 멀리가고 더 많이 교환하고 더 연결되고 더 세련된 세계에서 살고 있을까?
 
올 7월 프랑스는 도시 소요사태로 혼란스럽다. 아프리카 이민 가정 출신 10대 청년이 파리 외곽에서 교통 검문을 피하려는 중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전역에서 경찰 폭력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방화, 무력 충돌, 상점과 차량 파손 등 과격해지는 양상이다.
10대 아프리카계 이민2세, 무슬림 청년들이 폭동을 주도하고 있다.  SNS 채널을 활용하여 시위에 참여하고 모임을 조직하기 때문에 도시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인권, 복지, 관용과 관련된 수사가 주목받던 유럽의 정치지형도는 변하고 있다. 이제 중도층의 마음에 호소하기 위해 질서, 보수, 국익과 관련된 언어가 사용된다. 
유럽사회는 세계대전; 과열된 민족주의, 권위주의체제를 겪으며 우측 혹은 좌측으로 편향되는 것을 경계하는 내재적인 균형감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틀거리고 있다.
 
2003년 수단 정부가 다르푸르Darfur 지역에서 정부군을 동원하여 종족과 종교가 다른 민간인을 수십만명을 학살하고 반군도 이에 맞서 투쟁하는 유혈사태가 있었다. 
서구의 압력과 제재에 직면했을 때 주미 수단 대사는 기자 회견에서 코카콜라 병을 들고 “우리는 이것을 잃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 수단은 또다시 내홍을 겪고 있다. 2023년 4월 봉합되지 못한 인종과 종교의 갈등으로 인해 내전으로 번졌고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고 지금 수백만명이 국경 근처 천막촌에서 내전을 피하고 있다.
또다시 우리는 코카콜라를 잃을지도 모른다. 앞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아라빅검은 수단에서 생산된다.
수단은 세계 총 수출액의 약 70% 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아라빅검 생산국이며 수단에 수백만 명이 이 산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수입을 얻는다.
아라빅검은 탄산음료에 첨가되는 주요한 원료이다. 무색, 무취의 이 원료는 액체에 녹으면 점성질을 띄어 착향을 돕고 탄산이 오래 보존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인체에 전혀 해롭지 않아 식료품에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사용된다. 수천년이 흘렀지만 현대기술로도 이 원료를 완벽하게 대체할 원료는 개발하지 못했다. 
수단 내전으로 인해 아카시아 나무를 재배하고 아라빅검을 수확하는 농가와 도시 그리고 항구를 잇는 인프라는 파괴되었다.
세계 다국적 기업의 명운과 단돈 천원으로 청량감을 살 수 있었던 우리의 일상은 아슬아슬하게 한 국가의 평화 여부에 달려있었던 셈이다.
 
앤트워프에는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Sir Peter Paul Rubens가 생전에 거주하고 스튜디오로 활용한 
루벤스의 집이 있다.
현재는 대중에게 개방되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생전에 “화가 중의 왕자이며 왕자들의 화가”라고 불렸으며 영국 찰스1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그는 부와 명성을 모두 누린 몇 안되는 화가이다.
그는 1577년 앤트워프 부르주아 가정에서 출생했다. 당시 앤트워프는 단연 북유럽 발트해와 저지대 유럽을 중개하는 무역과 금융업이 발전한 도시였다. 
플랑드르 지역에 상인계급의 성장, 자유로운 학문 교류와 종교 개방은 루벤스와 같은 거물 화가가 등장할 수 있는 배양분이 되었다. 
루벤스 경의 선조는 플랑드르 지역에서 대대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상인 계급이었다. 
부친은 얀 루벤스 Jan Rubens, 법률가였으며 조부는 바르톨로메우스 루벤스 Bartolomeus Rubens, 식료품점 운영자이자 약제사였다. 
그의 선대는 식료품점을 운영했고 식료품점은 향신료, 향수, 꿀, 설탕, 면모, 페인트, 동양에서 수입한 희귀품을 취급했다. 때로는 식료품점 운영자는 약사, 약제사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바르톨로메우스는 당시 다른 부유한 상인들처럼 화가Jacob van Utrecht에게 그의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의뢰했다.
당시 플랑드르 지역의 상인은 자부심이 가득했다. 귀족들처럼 대를 이어 온 토지로 부를 축적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야망과 근면함, 모험정신으로 자산을 형성하여 도시의 지배층이 되었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의뢰인의 부유함과 고상한 취향 그리고 소양을 초상화에 암시한다. 주로 기물들을 그림 속에 배치하여 의뢰인의 주문 의도에 부합한 작품을 그렸다.
그림 속 바르톨로메우스 루벤스를 보자. 그의 외투는 호화롭다. 외투의 깃은 털로 장식되어 있고 그는 외투깃의 털을 만지고 있다.
또 다른 한 손은 오렌지 빛이 감도는 반투명 덩어리를 쥐고 있고 그 앞에 비슷한 덩어리가 놓여있다. 이 두 개의 호박색 덩어리는 아라빅검이다.
호화로운 외투가 그의 부를 과시하는 것이라면 이 덩어리는 검박해 보인다.(당시 플랑드르 부르주아의 초상화를 보면 상아, 동물뼈, 은전, 유리 등 호화로운 사치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덩어리는 그가 아라빅검을 취급하는 식료품점 상인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내비치고 싶은 것은 그의 야심이다. 

The portrait of Bartolomeus Rubens by Jacob van Utrecht 1530

아라빅검은 유럽인들이 주로 사용한 명칭이다. 유럽인들은 아카시아 나무 수액덩어리를 아랍 상인에게서 구매했고 원산지와 직거래하지 못했다. 정확한 재배지도 품종도 몰랐다.
현재 아라빅검의 다른 명칭은 아카시아검이다. 다시 말하면 아라빅검은 유럽인들의 착각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라빅검은 이런 잘못된 정보에 의해 환상 혹은 망상의 이야기가 덧씌워져 유통되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655년 무슬림 해군이 마스트 해전에서 승리하면서 라틴제국은 동지중해 지배권을 잃었다. 
이어 키프로스, 크레타, 몰타에 아랍 왕국이 건설되면서 로마제국의 ‘우리의 바다(mare nostrum)’ 지중해는 무슬림 선박으로 가득했다. 
이후 비옥한 곡창지대이자 동방 물품의 창고였던 이집트를 이슬람왕조가 지배하면서 유럽은 오랫동안 세계무역체제의 변두리 혹은 저개발 지역에 머물게 되었다.
아랍 왕국의 통치 하에 홍해,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로드가 통합된 글로벌 무역체계가 형성되었다.
사막과 무역항로, 초원을 아우르는 무역길을 따라 다양한 인종, 종교, 사상이 교차되고 융합되면서 10세기에 아랍의 문화는 절정기에 이르렀다. 바그다드는 온 세계 무역의 집결지이며 선진문화의 요람이었다. 
알 만수르 Al Mansur는 “이것이 티그리스 강이다. 이제 우리와 중국 사이 어떤 장애물도 없으며 바다에 떠 있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흘러 들어올 수 있다.” 라고 선언했다.
홍해와 페르시아만을 두 팔로 둔 이슬람은 융성했다. 1187년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1291년 맘루크 왕조가 시리아 해안의 모든 항구를 파괴하면서 유럽은 더욱 세계적인 무역망에서 소외되었다.
13세기 까지 유럽은 알렉산드리아를 통해 간신히 동방의 문물을 접할 뿐이었다. 진귀하고 호화로운 물건은 아랍상인들의 손을 거쳐 왔다.
유럽인이 보기에도 동양은 더 부유하고 세련되고 과학이 발전한 문명 지역이었다. 동양에서 온 이 검에는 유럽인의 동양에 대한 환상이 덧입혀졌고 유럽인은 이것을 고귀한 검 noble gum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셰익스피어는 아라빅검을 고귀한 신분을 암시하는 장치로 사용했다. 그의 비극 오셀로 Othello에서 용맹한 무어인 장수 오셀로가 충동적으로 저지른 살인에 대해 스스로 변호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솔하게 남을 의심하지 않는 남자였으나, 속임수에 넘어가 극도로 당혹하여, 어리석은 인도인처럼 자기의 온 민족보다 값진 진주를 그 손에서 내던져 버렸다. 
생전 울어 보지도 않던 남자가 이번 만은 슬픔에 못이겨, 아라비아 고무나무가 수액을 흘리듯이 억수같은 눈물을 쏟았다...이렇게 써주시오.” 그는 아라빅 검을 언급하며 그의 선한 심성과 고귀한 신분임을 드러낸 것이다.
바르톨로메우스 초상화 속 아라빅검은 그의 신분을 드러내거나 고귀해보이기를 갈망하는 그의 욕망을 표현하는 장치이다. (실로 그의 손자는 기사 작위를 받은  귀족noble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욕망을 매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무수히 목격하고 있다. 

아라빅검은 동양에서 왔지만 원산지는 아프라카 사하라사막의 동과서를 횡단하는 사헬지대Sahel이다. 
사하라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베르베르인들은 아라빅검을 아랍상인들 통해 유럽으로 보냈다.
15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들어가는 무역항로를 열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무역은 정기화되었다.
토메 피레스Tomé Pires에 말에 따르면 말라카 해협은 “세계의 식도”였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선박이 세계의 식도를 틀어 쥐면서 유럽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무역체제의 편입되었고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뒤이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막대한 자본과 군사력을 동원하여 식민지 정복 대열에 합류했다. 16세기에 이르러 유럽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직접 무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라빅검은 베르베르인을 통해 구할 수 밖에 없었고 아라빅검에 직접 다가서려는 시도는 여러 번 좌절되었다.
17세기 유럽에서는 아라빅검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아라빅검이 섬유에 섬세한 패턴이나 색을 입히는데 주요한 원료로 사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면직물 산업의 발전과 인도산 섬유 공급의 증가 그리고 소비자들의 취향이 고급화되면서 아라빅검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은 과열되었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은 서아프리카 세네갈을 통해 아라빅검을 공급받았고 해마다 수입량은 증가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유럽으로 향한 아라빅검이 1,000톤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세네갈과의 무역 독점, 더 나아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나는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는 충돌했다. 
프랑스는 마르세유와 마주보는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세네갈, 가나, 코트디부아르에 이르는 서아프리카 해안 지역 무역항을 확보하고자 분투했다.
한편 1798년 아프리카 북부 지역 이집트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침략에 굴복했다.
1834년 룩소르 신전 앞 오벨리스크가 파리 콩고드 광장에 이식되는 광경을 본 유럽인들은 비로소 오리엔탈 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했을 것이다.18세기 19세기 아프리카 대륙은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학보를 위한 각축장이었다.
해안 무역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은 내륙으로 진출하여 광산을 채굴하고 거주민들을 신대륙 플랜트 농업에 활용할 노예로 선박에 태웠다.
노예무역은 자원이 풍부하지 않아 교역 조건이 불리한 지역에서 주로 하던 일이다.
베네치아와 제노아가 압도적으로 자원이 풍부한 이집트와 이슬람 상인과 거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아나톨리아 산악지대와 흑해 넘어 민족들을 노예로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예무역은 야만적이나 오랜 교역 물품 중 하나였고 눈부신 맘루크 왕조도 유럽인이 공급한 인력 덕분에 부흥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자원을 두고 유럽의 많은 정치인, 경제학자, 기업가들은 자유무역질서를 정립하고 무역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가 동일한 질서 안에서 거래할 것을 주장했다. 
오늘날 세계무역 질서와 시장 경제 질서의 원류라고 하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하나의 아이디어였던 것 뿐이다.그런데 아라빅검 거래에 적용하면 보이지 않는 손은 마비된다. 아라빅검의 특수성 때문이다.
아라빅검은 아프리카 사헬지역에서 자라는 아카시아 나무로부터만 채취할 수 있고 전통적인 방식으로만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설비와 기술에 투자할 요인이 없다.
생산자는 소수인데 반해 중개자와 대리인 그리고 구매자가 다수이기 때문에 이들간의 경쟁으로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공급되지 않는다.
영국과 프랑스 상인은 아라빅검을 싣고 오는 베르베르인에게 거듭 무력감을 맛봐야 했다. 

1834년 파리 콩고드 광장에 세워지는 오벨리스트

수단의 동과 서를 가로지르는 검 벨트; 아라빅검 생산지
탐욕적인 영토 확장과 치열한 식민지 분쟁의 열기를 식히고 유례없는 대규모 전쟁을 피하고자 아프리카 대륙에 각국의 이해를 반영한 구획을 나누고 서로의 지배권을 침범하지 않을 것을 참가자들은 합의한다.
합의문에는 아프리카 대륙에 거주하고 있던 다양한 인종과 종교, 생활 양식을 반영한 조항은 없었다.
이때 그어진 분할선은 지금도 남아 끊임없이 아프리카 국가들을 분열시키고 선진국에 종속시키며 거주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이번 달 프랑스에서 일어난 아프리카 이민가정 출신 청년들이 주도하는 도시 폭동은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오랜 식민지 통치 그리고 이 지역의 근대화를 위한 원조가 가져온 후과이다. 
글로벌 식품, 인쇄, 화장품 회사들이 수단산 아라빅검 재고가 바닥날 것을 염려하며 안정된 공급망을 모색하고 있는 이유는 수단의 지속적인 정치 불안 때문이다.
1955년 독립한 이후로 독재정권의 지속적인 집권, 무슬림세력과 기독교 세력의 갈등, 북부 지역과 남부지역 간 불균형, 자원을 둘러싼 경쟁, 러시아의 개입 등 수많은 요인들이 수단의 미래와 아라빅검 수출을 방해하고 있다.
 
다시 바르톨로메우스 초상화로 눈을 돌려 그가 쥐고 있는 아라빅검을 보자.
그로부터 아라빅검을 빼앗았으면 지금 현대는 좀 더 평화로울까? 플랑드르 상인의 야심과 원거리 교역에 대한 국가들의 열망이 적었다면 현대 국가들간의 경계는 좀 더 높았을까?
국가의 경계가 무의미해보이는 오늘날 우리의 운명 아니 국가의 운명은 진정 거주하고 있는 곳 혹은 지리에 구속되지 않을까?
그의 단호한 눈빛을 본다. 결단코 아니다. 
인류의 본성; 편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 마음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서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다시 이 자리에 세울 것임을 안다. 이건 결코 착각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허상-자유로운 세계 무역의 헤게모니, 작위없는 문명의 진보, 단단한 동시대인과의 연대 -임을 알기 위해서는 
오히려 피상적이고 파편적인 현실의 모습이 아니라 과거의 인류로부터 공통점을 탐구하는 일로부터 비롯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