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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단상은 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과정 중에 참고 혹은 영감이 되었던 이야기를 나누고자 만든 섹션입니다.
누군가의 일상에서 정직하게 그 쓰임을 하는 것만으로도 제품을 만든 사람은 기쁩니다.
그런데 제작자가 사물의 기능과 디자인이 아니라 기타 부연설명을 늘어놓는 이유는 조금은 특별한, 흥미로운 존재로 자리 한켠 차지 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번 사물단상의 오브제는 길이 약 15 cm , V자 형태의 홈이 길게 나 있는 인센스 홀더 리버2입니다.
인센스 나이트 시리즈 모닝시리즈와 함께 구성된 홀더입니다.
루이스 칸이 설계한 솔크 연구소 중정에 모습을 모티브로 제작했습니다. 조사해보니 루이스칸은 알함브라 궁정에 있는 수로의 모습을 차용했다고 합니다.


사물단상. 인센스홀더 리버2
숭고의 감수성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 160cm가량의 작은 키, 허름한 차림새 노인이 뉴욕 펜스테이션 Penn station 화장실에 쓰러졌다. 품 속에 있던 여권은 신원 확인조차 어려울 정도로 낡아 공중 시체 안치소로 보내졌다.
이는 20세기 건축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루이스 칸Louis Kahn 의 마지막 기록이다.
 
1974년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그의 강의실과 사무실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졌다. 
그의 나이 73세. 그 사이 뉴욕에서 만 킬로미터가 떨어진 가난하고 이제 막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도입된 나라에서 그의 인생 역작이자 한 국가의 자긍심인 국회의사당이 건설되고 있었다.
1982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의사당 건물이 완공되었다. 건축 장비와 기반시설이 전무했던 곳에서 방글라데시 인들은 맨손으로 육중한 콘크리트 건축물을 호수 위에 올렸다
여전히 현재도 시민 대부분은 빈곤하고 정국은 혼란스러우나 이 의사당 건물은 아직 이 나라가 극단적인 종교의 열기에 빠지지 않고 타협하고 합리적인 이성 판단을 하는 국가임을 증명한다.
한 개인이 먼 타국에 와서 생전에 결코 완공되지 않을 것 같은 건물을 설계하고 십여년을 열악한 지원과 낯선 풍토를 견디며 오직 하나의 완성물을 위해 헌신했을 그 마음을 헤아려보면 숙연해진다.
그리고 그의 초라한 마지막 모습이 투영되면 고난에 굴하지 않고 신념을 위해 희생한 어느 순례자의 숭고한 죽음이 떠오르는 것 아닌가. 
 
방글라데시 국회 의사당 national parliament house bangladesh

숭고 Sublime. 루이스 칸이 자신이 설계한 공간에 발을 들인 사람들이 꼭 체험하게 만들고 싶은 감정이었다.
그가 50대 쯤 떠난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고대 유적들 앞에서 느꼈던 그 감정을 그의 건축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려했다.
국제주의 건축 사조가 팽배했던 시절, 공간은 기능을 위해 봉사했고 거주자의 욕망, 감정은 중요한 화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에 따랐다. 현재 그는 어떤 사조의 작가로 분류되기 보다 새로운 개념과 철학을 던진 건축가로 평가 받는다.
 
숭고라는 감정은 새로운 감수성이 아니다. 
루이스 칸 이전에 많은 예술가가 숭고라는 감수성을 일으키는 작품을 만들었고 그 감수성을 묘사했다.
선과 악, 쾌와 불쾌, 미와 추의 경계를 넘어선 감정이 주목받기 시작한 때는 18세기에 이르러서다.
E.버크 E.Burke는 “광대한 차원,거칠음,묵직함,단단함,어두움,무분별하고 형식이 없으며 불명료한 대상들에 의해 촉발되는 강렬한 감정”을 숭고라고 지칭했다.
I.칸트 I.Kant 는 숭고라는 감수성을 세분화했다.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로 구분했는데 수학적 숭고는 감상자의 상상력과 척도를 넘어선 크기에 압도되는 감정의 고양이다.
그리고 “높이 솟아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한 절벽, 번개와 우뢰를 품고 유유히 다가오는 하늘…황폐를 남기고 지나가는 폭풍…우리가 이러한 대상들을 숭고하다고 부르는 것은
그 대상들이 정신력을 일상적인 범용 이상으로 높여주며 또 우리의 내부에 전혀 다른 종류의 저항력이 있어서
그러한 저항 능력이 우리에게 자연의 외관상 절대적 힘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일으켜 준다는 것”을 역학적 숭고라고 구분했다.
F.실러 F. Schiller 는 재미있는 표현을 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일생의 친구와도 같은 수호신을 둘을 주었다.
하나는 기분 좋고 가벼운 것으로 힘겨운 우리 여행길을 밝고 활기찬 놀이로 단축시켜주고…그 수호신이 사라지고 나면 진지하고 과묵한 다른 수호신이 등장한다.
이 수호신은 튼튼한 팔로 우리를 깊은 심연 너머로 데려다 준다. 이 두 수호신 중 첫번째는 미의 감정으로 두번째는 숭고 감정으로 지각된다”. 
18세기 회화 중 장엄한 자연 풍광을 그린 회화들은 이러한 감수성을 유발한다.

안개 위의 방랑자 1818년C.D 프리드리히 C. D.Friedrich

북극 빙판에 난파된 배 1876년 W.브래드퍼드 W.Bradford 

로스코 채플에 있는 3폭 제단화  1971년 M.로스코 M.Rothko

 숭고한 영웅   1951년 B.뉴먼 B.Newman

1950년대 들어 B.뉴먼 B.Newman 과 M.로스코 M.Rothko는 관람객을 단색으로 가득 채운 거대한  캔버스 앞에 세웠다.
무한히 확장된 색상 앞에 선 유한한 존재가 느낄 불가피하고 보편적인 감정을 촉발한다.
  
솔크 연구소 중정 salk institute courtyard

그리고 루이스 칸은 미국 샌디에고에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연구동
Salk Institute 앞 중정에 우리를 세웠다.
중정에는 일직선으로 길게 뻗은 수로가 나있고 양 옆으로는 엄숙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서있다.
어떠한 조경도 없는 중정의 빈 공간에는 하늘과 바다의 풍경이 들어오고 시시각각 변하는 태양광에 따라 무수한 색채가 쏟아진다.
자연광에 의해 끊임없이 변모하는 생명체가 된 건축물 앞에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오른다.
말년에 이르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 건축가는 이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 측정불가능한 것으로부터 시작해 헤아릴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가 이 헤아릴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것에 매달린 이유는 그것이 사랑과 미움, 고귀함 어쩌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위대한 기념비적인 업적들이 영속하는 까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영속적인 가치에 전 생애를 바친 인물의 세속적인 삶은 어떠했을까?

그의 하나뿐인 아들 혹은 그의 사랑을 영원히 갈구하던 숨겨진 여인의 아들 나다니엘 칸 Nathaniel Kahn이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건축가, 아들의 여행 My architect: A son’s journey. 2003> 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루이스 칸 본명은 이체 레이브 슈무일로프스키 Itzeb Leib Schmuilowsky.1901년 출생.
전쟁을 피해 미국 필라델피아로 이주한 에스토니아 출신 유대인 이민 가정 출신이다. 
가난했지만 이른 나이에 예술가에 꿈을 피운 소년은 이후 건축학을 전공하여 필라델피아의 여러 건축사무소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30년 에스더Esther Kahn 과 결혼하고 이후 그는 그녀의 도움으로 첫 건축사무소를 얻는다. 
그리고 같은 사무소에서 함께 일한 동료, 앤 팅 Anne Tyng을 만나 9년동안 교제한다.
앤 팅은 기하학적 패턴과 조형적 건축물에 빛을 적용하는 설계에 탁월한 능력을 지녔고 루이스 칸은 그녀의 빼어난 감각과 개념을 차용하여 여러 프로젝트를 달성했다.
그러나 그의 아이를 임신한 그녀는 쫓기듯 사무실을 떠났다.
이후 루이스 칸은 그의 사생활을 렌즈에 담은 남자의 어머니, 해리엇 패티슨Harriet Pattison과 연애한다. 그녀는 킴벨 아트 뮤지엄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한 뛰어난 조경가였다.
(내가 그녀들의 풀네임을 기재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몇번째 아내 혹은 애인으로 서술되기에 그녀들이 실로 전념을 다한 분야에 있어서 뛰어난 전문가이자 존경받는 학자이기 때문이다.)
이 방종한 사내는 세 명의 여인들에게는 누군가의 남자였으며 세 명의 자녀들에게는 누군가의 아버지였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한 한줌의 추억을 붙잡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남자의 침묵만으로 채워진 공간에서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기 위한 기록을 남긴다.
말없는 그의 건축물을 방문하고 그를 아는 동료들을 인터뷰한다.
 
이 감독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당혹감과 낭패감이 든다. 평생 건축의 본질에 대해 천착하고 부의 축적보다 그의 신념을 따르는 성취물을 위해 일생을 헌신했던 구도자와 같은 면모와 대비되는 이면을 목격한 것이다.
물론 인간은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존재인지라 개인의 윤리적 도덕적 미숙이 그의 학문적 사회적 기여를 폄하하는 사유가 될 수는 없다.
다만 봉합 불가능한 간극, 사적인 삶에 대한 처신과 공적인 과업에 대한 태도 간에 극명한 대비는 그의 건축물을 닮은 듯하다.
드라마틱한 빛과 어둠의 대비가 연출된 공간 그리고 이 공간이 생성한 무한한 깊이감, 확장감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파장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전개 말이다.
다카 국회의사당은 내부자가 빛과 어둠의 다양한 밀도와 대비를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높은 천장에서 빛이 쏟아져 내려오는 회의장 그리고 나서면 이어지는 어두운 복도 따라 걸으면 당도하는 메인홀에는 자연광이 쏟아진다.
그리고 어두운 회랑 끝에서 기도실을 만난다. 원형 개구부를 통해 들어오는 다채롭고 따스한 빛이 마치 신의 형상을 대신하는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건물 구석구석에 설계자의 인간에 대한 배려와 존경심이 배어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여 건축 자재로 사용하고 남아시아의 뜨거운 태양과 많은 강우량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고 타국의 정치제도와 종교를 반영한 설계를 보면
그가 인종, 종교, 경제적 지위를 넘어선 인간 본질; 무한한 잠재성을 지닌 존재에 대한 깊은 연대감이 있었음을 생각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 국회 의사당 national parliament house bangladesh 내 기도실 mosque

우리가 어느 개인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의 단면만을 겨우 짐작해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인에게 연대감을 느끼고 상대방을 연민할 수 있다.
저마다 각자의 전장에서 예측조차 아니 예단조차해선 안되는 고통에 직면하고 투쟁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처절하게 투쟁하지만 너무도 유약한 존재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질수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 형언할 수 없는 것;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구현하기 위해 애써온 한 인생에 대해 숭고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떠한 취향, 어떠한 감정을 주관적 선호 혹은 취향의 영역으로 밀어넣고 형언할 수 없다고 표현하거나 분석 및 비평의 대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일은
인간의 깊은 내면과 이성의 정교한 판단력을 시험해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숭고의 감수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기 전에 미와 추,쾌와 불쾌, 욕망과 이성은 대립되는 개념이었고 인간 스스로도 인간을 단편적으로 이해했다.
낭만적, 고딕적, 아방가르드적 장르를 거쳐 인공지능, 버추얼 라이프가 대중화되고 있는 시대에 진입한 우리는 인간 특유의 감수성(복제불가능하고 재현불가능한)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에 대한 것을 분석하기에 앞서 우리는 인류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